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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인터뷰] ‘지도자 변신’ 최대성 “온라인포커 애증의 선수, 그게 운명인가 싶다.”

-베테랑 투수 최대성, 유소년 지도자로 제2의 인생 시작 -“16년 현역 생활한 것도 행운, 어려운 시절 잘 견뎠다.” -“구위 아닌 제구에 더 집착한 게 악영향, 나만의 야구가 없었다.” -“친구 같은 지도자가 목표, 유소년 야구 씨앗 잘 뿌리고 싶다.” -“‘애증의 선수’가 내 운명,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감사하고 죄송하다.”



[엠스플뉴스]

‘150km’


이 숫자는 투수 최대성을 끝내 애증의 선수로 만들었다. 최대성은 신인 시절부터 150km/h가 훌쩍 넘는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뿌린 이유로 항상 지도자들이 건드리고 싶은 선수였다. ‘제

구만 잡히면 된다’라는 주위의 시선은 최대성의 장점을 점점 사라지게 했다.


프로 생활 동안 투구 자세를 셀 수 없이 바꿨습니다. 이제 유니폼을 벗을 때 뒤를 돌아보니 ‘저만의 야구’가 없었더라고요. 그렇게 갈피를 못 잡은 건 결국 제 탓입니다. 더 좋은 투수로 성장할 기회를 항상 놓쳤어요. 최대성의 말이다.

2004년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한 최대성은 ‘구도’의 암흑기와 부흥기를 모두 겪었다. 이후 2015년 KT WIZ로 깜짝 트레이드된 최대성은 부침을 겪다 2017년 2차 드래프트 때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지난해까지 1군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한 최대성은 끝내 방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러 팀에 입단을 문의했지만, 최대성의 현역 연장은 여의치 않았다.

결국, 최대성은 선수가 아닌 유소년 지도자로 새 출발을 결정했다. 최대성이 남긴 KBO리그 통산 기록은 225경기 등판 14승 16패 2세이브 26홀드 평균자책 4.49 202탈삼진이다. 엠스플뉴스와 만난 최대성은 ‘은퇴’라는 거창한 단어를 붙일 만한 선수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야구팬들에게 대표적인 ‘애증의 선수’로 남게 된 최대성의 야구 인생을 되돌아보고자 했다. 한국 야구의 암흑기와 부흥기를 모두 겪은 ‘16년 차 투수’ 최대성의 얘긴 분명히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었다.

“밑바닥까지 떨어져야 고마운 주위 사람들이 보이더라.”



지난해 가을 방출 뒤 소식이 없었다. 근황이 궁금하다.

방출 뒤 여러 팀에 문의했는데 최근까지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한국 야구 추세가 전반적인 선수 인원을 줄이고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는 기조가 있으니까 힘들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 같은 선수가 거창하게 ‘은퇴’했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사실 지난해 두산 스프링 캠프 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두산 이적 뒤 지난해 캠프 때 몸 상태가 가장 좋았다. 그런데 캠프 막판에 자고 일어나니 왼쪽 어깨뼈가 너무 아팠다. 거기서 아프다고 쉬면 좋았던 분위기가 끊길 듯싶어 참았다. 그러다 보니까 팔이 잘 안 올라가는 상황까지 왔고 시즌 첫 경기를 망치게 됐다. 2군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시즌 끝까지 1군에 등판할 기회가 없었기에 어느 정도 방출을 예감했다.

두산 팬들의 기대가 컸기에 그만큼 아쉬움도 진하게 느껴졌다.

두산 소속일 때 ‘한만두(한 이닝 만루 홈런 두 방)’ 같은 안 좋은 장면도 남겼으니까 욕을 먹어도 싸다. 내 야구 인생에서 좋은 장면보단 안 좋은 장면이 더 많았다. 팬들에게 죄송할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어떤 위치에서든 누구에게 부끄럼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단 점이다.

(최대성은 2018년 3월 31일 수원 KT전에서 한 이닝 만루 홈런 2개를 맞고 1이닝 9실점을 기록했다)

팀이 극적인 통합 우승을 달성했지만, 그 순간을 함께 누리지 못한 점도 안타까웠다.

일단 팀이 잘 되는 게 먼저지 않나. 그렇게 극적인 우승을 거둔 게 정말 기뻤다. 두산은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 모인 팀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난해 방에서 불을 끄고 몰래 1군 경기를 핸드폰으로 보기도 했다. 나이가 드니까 눈치도 많이 보이고 민폐인 느낌이었다. 내 자리 때문에 다른 어린 선수가 기회를 놓치진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계속 들었다.

운동선수로서 ‘착한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단 얘길 많이 들었겠다.

아내도 그런 말을 하는데 쓸데없는 배려심이 많다고 하더라(웃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싫어한다. 어떻게 보면 운동선수에 맞는 성격은 아니었다. 흔히 나빠야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지 않나. 그래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내 성격이 거기에 어울린다고 믿는다(웃음).

그래도 16년 동안 현역 생활을 이어왔다. 그건 대단한 일이다.

유니폼을 이렇게 오래 입었던 것도 정말 복이다. 사실 KT로 이적한 뒤 나에게 이유 없이 공을 똑바로 던지지 못하는 ‘스티브 블래스(Steve Blass)’ 증후군이 찾아왔다. 그때 심적인 상처가 정말 컸다. KT 시절 3년 동안 거의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이래서 사람이 나쁜 생각을 하는구나’라는 단계까지 가기도 했다.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그때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어떤?

밑바닥까지 떨어져 봐야 주위에서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보인단 거다. 잘 나갈 땐 아무리 주위에서 얘기해도 그게 안 보인다. 현재 한화 이글스에 있는 이희근 코치를 포함해 KT 시절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당시 KT에 아프고 힘들었던 선수들이 많이 모였으니까 더 끈끈한 분위기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투수 최대성을 대표하는 단어는 ‘150km/h 강속구’였다. 이 숫자가 오히려 안 좋은 방향으로 압박감을 줬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현역 시절 성적을 돌이키면 위기가 잦았다. 흔히 말하는 악마의 재능과 그걸 향한 기대 심리 때문에 실력 이상으로 현역 생활을 오래 이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명확한 기준을 뒀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한 게 가장 아쉽다. 150km/h를 넘는 강속구로 밀어붙이는 방향을 유지했어야 했다. 그런데 제구에 계속 신경 쓰다 보니까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더라. 그렇게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한 것도 결국 내 탓이다. 더 좋은 투수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싶다.

투구 자세도 자주 바꿨을 텐데.

(고갤 끄덕이며) 셀 수 없을 정도로 투구 자세를 많이 바꿨다. 나를 위한 변화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혼란만 더 커졌다. 그만 두고 나니까 ‘나만의 야구’가 없더라. 다음 생에 다시 야구를 한다면 지조 있게 하고 싶다.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미완의 ‘파이어볼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듯싶다.

두산에 있을 때 (홍)상삼이나 (이)동원이에게도 강조한 말이 있다. 나는 마운드 위에서 즐겁게 공을 던진 적이 거의 없다. 야구는 50대 50 확률이라 정말 재밌는 스포츠다. 아무리 잘 맞더라도 야수가 잡아주거나 파울이 될 수 있다. 야구를 시작할 때 초심으로 즐겁게 공을 던져봤으면 한다. 지금 마운드에 서는 시간이 정말 행복한 때라고 말해주고 싶다.

유독 미완의 ‘파이어볼러’들에게 비난과 비판이 가혹한 분위기가 있다.

내가 겉으로 호탕해 보여도 섬세하고 민감한 성격이 있다. 아무래도 롯데 팬들의 많은 관심 속에 성적까지 안 좋다 보니까 어린 시절부터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내 욕까진 괜찮았는데 가족 욕까지 나오다 보니까 그게 참 힘들었다. 최근 팬 문화는 괜찮아졌지만, 신인 시절 땐 정말 험악했다.

당시 롯데의 암흑기와 부흥기를 모두 겪은 장본인이다.

신인 시절 인조 잔디가 깔린 사직구장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단체 응원도 없고 경기 중에 자전거를 관중석에서 타고 다니시더라. 몇몇 팬은 전광판 아래서 삼겹살을 구워 드셨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만 야구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다가 베이징 올림픽 전후론 사직구장 관중석이 미어터졌다. 팬들이 펜스에서 사인을 받으려고 낚싯줄에 수첩을 걸어서 주시더라. 그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팬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꼈겠다.

사실 선수들이 인지해야 할 게 ‘프로야구 선수’라는 직업이 특별한 거지 그 사람이 특별해서 팬들이 다가오는 게 아니라는 거다. 프로야구 선수라서 그런 호사를 누리는 건데 그럴 때일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 팬 서비스도 결국 연봉 안에 다 포함된 요소가 아닌가.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새 출발 하는 최대성 “친구 같은 지도자가 되겠다.”



현역 유니폼을 벗는 상황에서 부모님을 향해 느끼는 감정도 남달랐겠다.

(잠시 침묵 뒤) 부모님에겐 울컥하고 죄송한 마음밖에 없다. 한없이 죄송한 아들이 된 듯싶다.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던 선수로서 삶은 이제 아니지만, 앞으로 새로운 인생과 화목한 가정으로 부모님을 웃게 하고 싶다.

아내도 옆에서 정말 많은 힘이 됐다고 들었다.

주위에서 다들 ‘아내 복’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웃음).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 단 한 번도 힘든 티를 안 내고,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 고마웠다. 앞으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지내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실 지도자 생활도 아내가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어떤 얘기였나.

내가 어린 시절부터 프로 시절까지 부당했거나 안 좋았던 경험을 얘기하니까 그걸 생각하며 지금 아이들을 올바르게 지도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유소년 야구 지도에 도전하려고 한다. 한국 야구의 씨앗을 잘 뿌리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 궁금하다.(최대성은 수원에 위치한 ‘PEC 스포츠아카데미’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계획이다)

‘지도자’라는 위치보단 친구와 같이 수평적인 관계로 다가가고 싶다. 먼저 선수가 있어야 지도자가 있고 팀이 있는 거 아닌가. 한국 야구는 그래도 아직 상하 관계가 확실한 편이다. 미국 야구에선 존댓말이 없어서 그런지 감독과 선수가 친구처럼 굉장히 편하게 지내더라. 고민 상담을 편하게 하는 게 보기 좋았다. 내가 지도자로서 무언가 성과를 거두고 싶은 것보단 그저 아이들이 야구를 마음껏 즐기도록 해주고 싶다. 건강한 생각으로 유소년 야구의 씨앗을 뿌리겠다.

‘지도자’ 최대성이 과거 ‘학생’ 최대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너는 정말 잘하고 있고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말을 전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고독하단 생각을 자주 했는데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니까. 또 프로 무대까지 오지 못하고 그만두는 많은 선수가 있는데 그들이 실패한 삶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겠다. 도전 자체가 의미 있고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팬들에게 ‘애증의 선수’, 그게 내 운명인 듯싶다.”



이제 글러브를 벗게 되는 상황에서 가장 그리운 건 무엇인가.

‘동료’다. 야구를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게 정말 행복했다. 온라인포커 1년의 절반이 넘도록 같이 땀을 흘리고 울고 웃었던 순간이 이제 없는 거니까 허전할 듯싶다. 또 다른 가족이 없어진 느낌이다.

현역 시절 최고의 공 하나를 꼽자면 어떤 장면인가.

2012년 문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10월 17일)이다. 어떻게 하다가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했는데 마지막 타자 임 훈을 상대로 공이 가운데로 말려 들어갔다. 다행히 좌익수 뜬공으로 이어져 세이브를 달성했다. 삼진을 잡은 공이 아닌데 그 공 하나가 유독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아마 내 프로 생활에서 가장 용감하게 던진 공이 아닐까(웃음).

은퇴하는 자기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쑥스럽게 웃으며) 대성아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이면에 힘든 일도 참 많았는데 잘 극복했으니까 대견하다. 진짜 많이 고생했다. 그동안 환생할 수준으로 욕도 많이 먹었는데 어떤 말이든 나에게 관심을 보여준 팬들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남은 새로운 야구 인생도 잘해보자.

야구팬들에게 ‘최대성’이란 선수가 어떤 기억으로 남으면 좋을까.

애증의 선수가 딱 맞는 말이다. 그게 내 운명인 듯싶다. 팬들에게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다 줬고, 팬들이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시기도 했다. 암흑기와 부흥기를 다 겪어봤으니까 희로애락을 다 담고 있는 투수가 아닐까. 참 다사다난하면서도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최대성을 응원했던 팬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

그동안 응원해주신 만큼 좋은 추억을 못 드렸다. 야구장에선 팬들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안 좋은 얘길 듣더라도 그 말을 한 팬들을 웃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 능력이 부족했던 점이 안타깝고 죄송하다. 이제 다른 선수들에게 계속 관심을 주고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 한국 야구를 계속 사랑해주셨으면 한다. 항상 감사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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