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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인터뷰] 한기주 “딸이 5살 때까지 뛰고 싶었는데…남은 야구 온라인포커 인생은 좀더 행복했으면”



-14년 프로 인생 마무리한 한기주, 우신고등학교 코치로 새 출발 -“지난해 4월 이미 은퇴 결정, 공을 던질 수 없는 팔 상태였다.” -“신인 시절 혹사 논란? 내가 부상 관리를 더 잘했어야 했다.” -“학생선수들이 나처럼 안 다치도록 도와주고 싶다.” -“현역 은퇴로 오히려 마음이 더 홀가분, 새로운 인생에서 행복 찾겠다.”



[엠스플뉴스=서울 우신고]

불꽃이 정말 강렬했지만, 너무나도 짧았다. 투수 한기주는 신인 시절부터 150km/h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뿌렸다. KIA 타이거즈 팬들은 10년 넘게 팀 마운드를 책임질 ‘파이어볼러’의 등장에 열광했다. 하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며 승승장구했던 한기주의 야구 인생은 순식간에 ‘재활’이란 단어로 가득 찼다.


부상 악령은 2009년부터 시작됐다. 팔꿈치와 손가락 인대, 그리고 어깨까지 말썽을 부렸다. 특히 2013년 어깨 회전근 수술은 한기주를 상징하던 온라인포커 강속구를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2년여의 재활 끝에 기적적으로 복귀한 한기주는 ‘기교파’ 투수가 됐다.

강속구의 빛을 잃어버린 한기주의 반등은 끝내 불발됐다. 1군 복귀 뒤 다시 잔부상에 시달린 한기주는 2017시즌 뒤 삼성 라이온즈로 1대 1 트레이드(<->외야수 이영욱)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한기주는 2018시즌 삼성에서 33경기 등판 1승 4패 3홀드 평균자책 6.69의 성적을 남겼다. 결국, 그것이 한기주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2019시즌 초반 다시 몸 상태가 안 좋아진 한기주는 일찌감치 은퇴를 결심했다. 한기주의 KBO리그 통산 성적은 272경기 등판 26승 32패 71세이브 12홀드 평균자책 3.89 314탈삼진이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한기주는 서울 우신고등학교 투수코치로서 지도자의 길을 새롭게 선택했다. 한기주는 이제 아이들이 ‘재활’로 가득 찼던 자신의 야구인생을 되풀이하지 않게 만들고자 한다.


현역 시절 너무나 높은 곳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진 굴곡을 겪었기에 은퇴를 택한 한기주의 마음속엔 아쉬움보단 오히려 후련함이 더 컸다. 현역 시절 행복하게 공을 던진 적이 거의 없었단 한기주의 얘길 엠스플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혹사 논란? 내가 부상 관리를 더 잘했어야 했다.”


지난해 가을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이 전해졌다. 몸 상태가 어느 정도로 안 좋았나.


지난해 4월부터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감정이 스스로 들었지만, 도저히 공을 던질 수 없는 어깨 상태였다. 병원에서도 그런 얘길 들었고 이제 안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 지금까지 이 어깨로 버틴 게 다행이었다.


어깨가 건강했던 과거로 돌아가길 원했겠다.


돌이킨다고 진짜 돌이킬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사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은퇴한 뒤가 더 만족스럽다. (잠시 침묵 뒤) 솔직히 그동안 야구를 하며 행복하다고 느낀 시간이 거의 없었다. 어린 시절 짧은 순간의 좋은 기억이 있지만, 내 야구인생 대부분은 재활로 가득 차 있다. 너무 힘들었기에 지금은 아쉬움보단 후련하고 홀가분한 감정이 더 크다. 

‘한기주’라는 이름에 따라다니는 건 혹사 논란이다. 2006년 신인 시절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44경기 등판 140.2이닝을 소화한 다음 2007년에도 55경기 등판 70.1이닝 소화를 기록했다. 어린 투수에겐 가혹한 등판 일지였단 시선이 대부분이다.


나에게 그런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 당시 어쩔 수 없던 상황이었다. 많이 던지고 안 던지고를 떠나 그 당시엔 마운드에 자주 오르면 그게 좋은 거로 생각했다. 주위의 환경 자체가 그랬다. 내가 부상 관리를 더 잘했어야 했다. 그때 관리를 더 잘했다면 마운드에 더 오랫동안 서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못했던 거라 팬들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2008년이 한기주의 야구 인생이 가장 빛났던 순간이다. 당시 시즌 성적(46경기 등판 3승 2패 26세이브 평균자책 1.71)이 커리어 하이였다.


내 야구 인생에서 그나마 제대로 공을 던졌던 시기다. 겁 없이 던졌던 그 시절이 그나마 제대로 야구를 야구답게 했던 시간이 아닐까. 대회 개인 성적이 아쉬웠기에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도 정말 영광스러웠다.


당시 올림픽 금메달을 합작했던 윤석민 선수도 비슷한 시기 현역 은퇴를 택했다.


(윤)석민이 형의 은퇴 소식도 정말 안타깝다. 나도 그렇지만, 투수에게 어깨 부상은 정말 치명적이다. 재활이 성공한단 보장은 없는 데다 공을 던지고 싶어도 못 던지는 그 심정은 정말 고통스럽다. 베이징 올림픽 때 같이 뛰었던 동료들 가운데 아직도 현역에서 뛰는 선수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오랫동안 뛰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운 감정은 분명히 있다.


비슷한 세대 선수들이 대부분 이제 현역에서 물러나는 시기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다. 입단 동기였던 손영민과 박경태 선수도 이제 다 그만뒀지 않나. 학교 선배이자 KIA에서 같이 있었던 (김)주형이 형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더라. 이제 KIA 구단에 아는 얼굴이 거의 없을 정도다.


재활과 지겹게 싸운 한기주, 이제 학교 지도자로 새 출발



현역 생활을 돌이키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2013년 어깨 수술을 선택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사실 그때 어깨 수술을 한 뒤 야구를 그만둬야겠단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수술이 성공한단 보장이 없었으니까 더 답답했다. 긴 재활 과정에서 나 자신과의 싸움도 고통스러웠다.


2년여의 재활 끝에 2015년 7월 16일 광주 LG 트윈스전에서 복귀전(1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치른 순간도 잊을 수 없다.


당시 2년의 공백이 있었기에 복귀전을 앞두고 정말 떨렸다. 그런데 KIA 팬들의 응원을 들으니까 뭉클했다. 주위에서 모두 다 복귀가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다시 공을 던지게 돼 감개무량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팬들을 위해 공을 힘껏 던졌다.

아쉽게도 복귀전의 감격이 좋은 흐름으로 계속 이어지진 못했다.


다음 시즌 준비에 더 신경을 썼는데 성적이 계속 좋지 않았다. 잔부상까지 겹치며 심리적으로 힘들었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팀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KIA는 새로운 길을 열어줬고, 삼성은 새로운 기회를 주셨다. 두 구단에 모두 감사했다. 다만, 삼성에서 있었던 2년 동안에도 부상과 부진이 이어져 죄송했다.


결국, 은퇴를 결정할 때 가족들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겠다.


(고갤 끄덕이며) 맞다.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가족들은 조금 더 도전하길 원했는데 도저히 몸 상태가 의지를 따라오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그동안 정말 고생했고 다른 길로 도전하면 된다고 위로해주셨는데 정말 울컥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뒷바라지해주신 부모님인데 더 좋은 활약을 못 보여드리고 이렇게 은퇴하는 건 정말 죄송한 마음뿐이다.


이제 ‘지도자’라는 제2의 인생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야겠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걸 배우고 싶어 곧바로 지도자 자격증까지 땄다. 나는 현역 시절 내내 부상으로 고생한 투수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지도자로선 여전히 초보라 배울 게 많다.


지도 과정에서 부상 방지에 초점을 두면 어떤 점이 눈에 들어오는가.


최근 학생선수들을 보면 확실히 유연성이 부족한 면이 있다. 투수의 경우엔 정말 중요한 요소다. 유연성을 통한 하체 중심 이동에 신경 써야 어깨와 팔꿈치에 과부하가 덜 간다. 큰 부상과 긴 재활을 겪어봤기에 아이들은 다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 지도자 생활을 배우는 동시에 아이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팬들에게 죄송한 한기주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아직 현역 생활이 그립진 않은가.


현역 시절을 그리워하기보단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재활 시간을 보내며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가 컸다. 오히려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이 더 마음 편하고 재밌다. 앞으로 걸어갈 새로운 길에서 현역 시절 느끼지 못한 행복한 순간을 더 자주 맛보고 싶다.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나는 팬들이 기억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선수다. 그만큼 팬들이 기대한 좋은 투수로 성장하지 못했다. 신인 시절 때 받은 큰 기대만큼 좋은 실력을 보여드리지 못해 팬들에게 죄송하다. 그나마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좋은 기억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 건 다행이 아닐까.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자기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고생 참 많이 했다. 현역 시절 힘든 기억은 이제 다 잊길 바란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으니까 아이들과 자주 소통해 좋은 지도자가 될 거로 믿는다. 온라인포커 남은 야구 인생은 조금 더 행복해지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떤 말인가.


먼저 열심히 내조해준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 그리고 이제 세 살인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 예전에 아내와 약속한 게 다섯 살 정도가 돼야 아이가 기억을 할 수 있으니까 그때까진 야구를 해보자는 거였다. 딸에게 야구하는 아빠의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새로운 야구 인생에서 그 미안함을 더 풀어주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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